유래
시조 : 윤신달(尹莘達)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그래서 파평 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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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윤심형(尹心衡, 1698生) : 문과(文科) 경종1년(1721) 정시 갑과 장원급제윤사윤(尹士○, 1409生) : 문과(文科) 세종18년(1436) 친시 을과 장원급제윤희성(尹希聖, 1409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갑과 장원급제윤현(尹鉉, 1514生) : 문과(文科) 중종32년(1537) 식년시 갑과 장원급제윤헌주(尹憲柱, 1661生) : 문과(文科) 숙종24년(1698) 춘당대시 갑과 장원급제윤담휴(尹覃休, 1544生) : 문과(文科) 선조2년(1569) 별시 갑과 장원급제윤계선(尹繼善, 1557生) : 문과(文科) 선조30년(1597) 알성시 갑과 장원급제윤희손(尹喜孫, 1557生) : 문과(文科) 성종7년(1476) 별시 갑과 장원급제윤돈(尹㻻, 1815生) : 문과(文科) 헌종15년(1849) 별시 갑과 장원급제윤진(尹搢, 1631生) : 문과(文科) 현종7년(1666) 별시2 갑과 장원급제 등 모두 142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40명, 무과 86명, 생원진사시 934명, 역과 41명, 의과 11명, 음양과 2명, 율과 10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파주파평(坡平)은 경기도 파주시(坡州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을 설치했던 지역으로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각각 개칭하여 내소(來蘇: 楊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파평현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봉성현을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였고,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원평군에 폐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뒤에 교하현은 다시 환원되었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파주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 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 1506년(중종 1) 다시 파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영평(領平)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한성부 파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1945년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積城面)·남면(南面)을 편입하였으며, 1946년 남면을 양주군에 이관하였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조산리(造山里)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관할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평윤씨는
1985년에는 총 154,497가구 646,648명,
2000년에는 총 221,477가구 713,94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