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윤의립(尹毅立)
  • 파평윤씨(坡平尹氏),  출생~사망 : 1568 ~ 1643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 초명은 의립(義立). 자는 지중(止中). 호는 월담(月潭). 공조판서를 지낸 국형(國馨)의 아들이며, 선비화가 정립(貞立)의 형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되었고, 이어 설서를 거쳐 1624년(인조 2)정자로 재직중 조카가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됨에 따라 벼슬을 그만 두었다. 1626년 다시 관직에 복귀되어 경주부윤이 되었으며, 그뒤 경상도, 함경도, 충청도, 경기도의 관찰사와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의정부의 좌참찬에 이르렀다. '동국문헌' 화가편(畵家篇)에 의하면 그림을 잘 그렸다 한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매우 드문 편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산수화첩 山水畵帖' 정도가 알려져 있다.이 화첩에 보이는 준법(○法), 수법(樹法), 필법(筆法) 등에서 남송(南宋)의 마하파(馬夏派)와 조선 초기의 안견파적(安堅派的)인 요소가 함께 간취된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산형(山形)과 그 표면처리에서는 그의 개성적인 특징을 엿볼 수 있어 그가 15세기의 화풍을 즐겨 따르면서 자기의 작풍도 아울러 이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림 이외에 '야언통재 野言通載'와 '산가청사 山家淸事' 라는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