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용(子用) 또는 국간(菊磵). 좌의정 필상(弼商)의 증손이며, 승홍(承弘)의 아들이다.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고, 1537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이 되고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50년 장악원정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광주목사(廣州牧使), 황해도, 충청도,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형조참판, 호조참판, 우참찬, 호조판서 등 중앙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72년(선조 5)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지돈령부사에 임명되었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그가 노년에 이르도록 관직에 있었던 것은 탁월한 행정수완 때문이었다. 특히 호조에서 근무할 때는 국가재정을 아끼고, 한편으로는 재정을 유족하게 만들어 국조 이래 제1인자로 칭송되었다. 명종 때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저서로는 '국간집 菊磵集'이 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