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윤동섬(尹東暹)
  • 파평윤씨(坡平尹氏),  출생~사망 : 1710 ~ 179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덕승(德升). 호는 팔무당(八無堂). 언교(彦敎)의 아들이며, 뒤에 현교(顯敎)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1754년(영조 30)에 전 현감으로서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대사간, 도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전결(田結)을 잘못 보고하여 대론(臺論)으로 파직되었다. 1762년 충청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이산(離散)하므로, 호서안집사(湖西安集使)가 되어 흩어진 농민들을 안집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뒤 대사헌, 이조참판,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771년 진주부사(陳奏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공조판서, 평안도관찰사, 우참찬을 거쳐 1790년(정조 14) 판의금부사에 이어 판중추부사로 치사하였다. 서예에 능하여 80세가 넘어서도 궁중의 서사(書寫)를 맡아 정조 로부터 필력(筆力)이 유건(愈健)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달천사비 達川祠碑', '적전사기적비 赤田社紀蹟碑', '적지기적비 蹟池紀蹟碑', '임경업충렬사비 林慶業忠烈祠碑' 등 당시의 금석문은 그의 손으로 씌어진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