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윤세유(尹世儒)
  • 파평윤씨(坡平尹氏),  출생~사망 : ? ~ 1215
고려의 문신. 문하시중을 지낸 관(瓘)의 손자이다. 1209년(희종 5) 왕이 연경궁(延慶宮)으로 행차할 때 우어사(右御史)로서 좌어사 최부(崔傅)와 더불어 호종의 임무를 맡고 새벽에 궁궐에 갔으나, 저녁 때가 되어도 왕이 오지 않으므로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린 일로 양주부사(梁州副使)로 좌천되었다. 1214년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이 되었고, 이듬해 최충헌(崔忠獻) 앞에서 이규보(李奎報), 진화(陳○), 중 혜문(惠文) 등과 시회(試會)를 한 인연으로 중용되기를 기대하였으나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우복야(右僕射) 정진(鄭○)을 모함하다가 도리어 무고죄로 섬에 유배되었다가 소환되어 오는 도중에 죽었다.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나, 주색을 좋아하고 조정의 정사가 뜻에 맞지 않으면 시를 지어 비방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광인이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