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판개성부사 승순(承順)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아우 향(珦)과 함께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1400년(정종 2) 방원(芳遠: 뒤의 태종)이 그의 동복형인 방간(芳幹)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고,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파평군(坡平君)에 봉작되었다. 1406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있을 때 다른 사건에 연루, 파직되어 파평현에 유배되었다가,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평안도관찰사로 기용되었다. 그가 학덕이 높은 것을 알고 있는 세종은 침전에서 환송연을 베풀어주는 등 크게 총애하였다. 이듬해 9월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그의 파격적인 출세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에 기악(妓樂)을 폐지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뒤 우참찬 까지 지냈다. 성질이 관후(寬厚)하고 풍채가 매우 좋아, 복옹(福翁)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시호는 소정(昭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