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국형(國馨)으로 개명. 자는 수천(粹天). 호는 은성(恩省) 또는 달천(達川). 현령 희렴(希廉)의 아들이다. 1568년(선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정언, 예문관응교, 홍문관부제학, 승정원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자 왜적의 침입에 대하여 무기를 정비하였다.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막아내다 패하여 파직당하였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순변사가 되었고, 판결사(判決事),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거쳐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이 되어 왜란 뒤의 혼란한 업무들을 처리하였으며, 광해군 초에 공조판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