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정(子精). 양주 출생. 취대(就大)의 손자로, 성구(成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동운(李東運)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부사과에 올랐는데, 1830년 호조판서 박종훈(朴宗薰)과 전에 유수를 지낸 신위(申緯), 그리고 어영대장 유상량(柳相亮) 등을 탐관오리로 탄핵하다가 군신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이유로 왕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楸子島)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당하였다. 1840년(헌종 6) 유배지로부터 의금부에 압송되어 국문을 받다가 아들 한모(翰模)와 함께 능지처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