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장씨(仁同張氏, 옥산)
유래
  • 시조 : 장금용(張金用)
  • 인동장씨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계통과 장계(張桂)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 있다.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초에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인물로 인동현(仁同縣)의 옥산(玉山)에 처음 거주하고 인동에서 대대로 살아왔으므로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 다만 일부는 예전 그대로 옥산을 본관으로 쓰는 후손도 있다.

    시조 장계(張桂)는 도시조 장정필의 후손으로 1305년(고려 충렬왕 31년) 고려 말에 진사에 급제하여 진현전 직제학을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예문관 대제학에 이르고 옥산군(인동)에 봉해졌다. 옥산이 인동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
    시조 장계의 묘소는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 발영전에 있다.
  •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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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급제자(조선시대)
  • 장주(張澍, 1708生) : 문과(文科) 영조20년(1744) 춘당대시 갑과 장원급제
  • 장용규(張龍逵, 1823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별시 갑과 장원급제
  • 장석유(張錫裕, 1838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별시 병과
  • 장세훈(張世勳, 1543生) : 문과(文科) 선조5년(1572) 춘당대시 병과
  • 장봉의(張鳳儀, 1710生) : 문과(文科) 영조23년(1747) 정시 을과
  • 장덕화(張德華, 1813生) : 문과(文科) 고종23년(1886) 함경도도과 병과
  • 장차주(張次周, 1606生) : 문과(文科) 인조22년(1644) 정시 을과
  • 장응표(張膺杓, 1819生) : 문과(文科) 헌종15년(1849) 식년시 병과
  • 장계문(張季文, 1478生) : 문과(文科) 중종14년(1519) 식년시 병과
  • 장응일(張應一, 1599生) : 문과(文科) 인조7년(1629) 별시 병과
  • 등 모두 31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6명, 무과 31명, 생원진사시 169명, 역과 23명, 의과 9명, 음양과 1명, 율과 2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
  • 인동(仁同)은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 초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이동혜현(爾同兮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고쳤다. 경덕왕 때 다시 인동현(仁同縣)으로 고치고 별호를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상주목(尙州牧) 경산도호부(京山都護府: 星州)의 속현(屬縣)으로 병합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를 두고 약목현(若木縣)을 속현으로 하였다. 1413년(태종)에 인동현에 현감(縣監)을 두었다가, 1604년(선조 37)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인동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인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이 폐지되었고 일부 지역은 인동면이 되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동장씨는
    1985년에는 총 129,731가구 538,803명,
    2000년에는 총 184,863가구 591,31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