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장기명(張基命)
  • 인동장씨(仁同張氏),  출생~사망 : 1903 ~ 1964
나전칠기공예가. 서울 출신. 철원부사를 지낸 두환(斗煥)의 막내아들이다. 소년기에 이왕직 미술품제작소(李王職美術品製作所)에 입소하여 김진갑(金鎭甲), 홍종범 등과 함께 나전칠기의 기예를 익혔다. 광복 직전까지 경성중앙시험소에서 칠기제작업무를 맡아 근무하면서 자택에 공방을 차려 칠기작품연구를 하였다. 1933년 제12회선전(鮮展, 朝鮮美術展覽會)에 '나전연상 螺鈿硯箱'을 출품하여 첫 입선하였고, 이듬해에 '당초무늬탁자 唐草模樣卓子'로 첫 특선, 제14회에 입선, 제15, 19, 23회에 다시 특선을 하여 공예가로의 위치를 굳혔다. 1945년 조선미술협회 공예부 창립회원, 1946년 조선나전칠기공예조합 창립평의원으로 참가하여 공방경영을 본격화하면서 제품생산에 힘쓰며 나중에 나전칠기공예조합장을 역임하였다. 19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고, 제4회 때 초대작가가 되었다. 1956∼1960년까지 5차례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3차례 출품하였다. 1959년 공예동인전에도 참가하고, 제8회서울시문화상(공예상)을 수상하였으며, 서라벌예술대학 공예과 강사를 역임하였다. 과묵, 온화한 성격의 호주가였던 그는 나전칠기공예가인 김진갑과 가장 절친한 사이였고, 목공예가 박성삼(朴星三), 화가 이상범(李象範), 도상봉(都相鳳), 노수현(盧壽鉉) 등 미술인들과 교우의 폭이 넓었다. 그의 작품은 조선 조 전통의 경향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으나, 주름질기법뿐만 아니라 부조효과의 조패기법(彫貝技法)을 능숙하게 구사하여 새로운 입체적 무늬 표현을 시도하며, 무궁화, 석류, 농악대 등 토속적 무늬를 즐겨 사용하였다. 특히, 1948년경 바가지를 테두리에 이용한 쟁반, 과자기 등의 나전칠기제품의 개발은 장안의 인기상품으로 10여년 동안 유행을 가져왔다. 그는 일본칠기기법인 마키에(蒔繪)에도 매우 능하였으나, 주된 기법으로는 나전기법에 큰 애착을 보이면서 생활제품의 생산에 역점을 두었던 장인적 공예가(匠人的工藝家)였다. 61세 때 닥친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