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원씨는 4파가 있는데 각각 시조를 다르게 하고 있다. 응암 운곡계는 당나라 태종 때 우리나라에 파견온 원경을 시조로 하며, 원성백계는 원극유, 시중공계는 원익겸, 충숙공계는 원충갑(원성백계)을 시조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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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원경하(元景夏, 1698生) : 문과(文科) 영조12년(1736) 정시2 갑과 장원급제원유붕(元有朋, 1753生) : 문과(文科) 순조2년(1802) 정시2 병과원탁(元鐸, 1577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을과원사용(元士容, 1577生) : 문과(文科) 선조2년(1569) 알성시 병과원자돈(元自敦, 1577生) : 문과(文科) 세종11년(1429) 식년시 동진사원계영(元啓英, 1707生) : 문과(文科) 영조23년(1747) 정시 병과원인손(元仁孫, 1721生) : 문과(文科) 영조29년(1753) 정시2 병과원경순(元景淳, 1701生) : 문과(文科) 영조12년(1736) 정시 병과원숙(元肅, 1701生) : 문과(文科) 태종1년(1401) 증광시 동진사원효연(元孝然, 1701生) : 문과(文科) 세종14년(1432) 식년시 동진사 등 모두 26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0명, 무과 47명, 생원진사시 149명, 역과 1명, 주학 7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 응암 운곡계
37世
규(圭) | 38世 호(鎬) | 39世 영(永) 승(承) | 40世 식(植) 직(稙) | 41世 묵(默) 훈(勳) |
42世 치(致) 교(敎) | 43世 종(鍾) 용(鏞) | 44世 구(求) 수(洙) | 45世 동(東) 상(相) | 46世 우(愚) 노(魯) |
47世 혁(赫) 철(喆) | 48世 회(會) 선(善) | 49世 태(泰) 제(濟) | 50世 수(秀) 목(穆) | 51世 병(炳) 형(炯) |
52世 균(均) 기(基) | 53世 상(商) 정(正) | 54世 준(浚) 택(澤) | 55世 인(寅) 진(震) | 56世 열(烈) 섭(燮)
|
- 원성백계
29世
후(厚) | 30世 의(義) | 31世 제(濟) | 32世 식(植) | 33世 유(裕) |
34世 재(載) | 35世 종(鍾) | 36世 호(浩) | 37世 영(榮) | 38世 성(性) |
39世 규(圭) | 40世 석(錫) | 41世 윤(潤) | 42世 동(東) | 43世 현(顯) |
44世 배(培) | 45世 진(鎭) | 46世 수(洙) | 47世 상(相) | 48世 용(容) |
49世 중(重) | 50世 호(鎬)
| 51世 - | 52世 - | 53世 - |
- 시중공계
24世
세(世) | 25世 상(常) | 26世 용(容) | 27世 희(憙) | 28世 종(鍾) |
29世 연(淵) | 30世 동(東) | 31世 섭(燮) | 32世 치(致) | 33世 선(善) |
34世 태(泰) | 35世 모(模) | 36世 병(丙) | 37世 기(基) | 38世 현(鉉) |
39世 영(泳) | 40世 주(柱) | 41世 열(烈) | 42世 재(載) | 43世 용(鎔) |
44世 홍(洪) | 45世 근(根) | 46世 희(熙) | 47世 배(培) | 48世 경(庚) |
49世 제(濟) | 50世 영(榮) | 51世 노(魯) | 52世 - | 53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세손은 24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원주원주(原州)는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 또는 치악성(雉岳城)인데,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北原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原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열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1683년(숙종 9)과 1728년(영조 4)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의 감영이 폐지되고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원성군(原城郡)이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원주군이 원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원주원씨는
1985년에는 총 24,557가구 102,811명,
2000년에는 총 33,655가구 109,50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