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원만석(元萬石)
  • 원주원씨(原州元氏),  출생~사망 : 1623 ~ 166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군옥(君玉). 호는 고산(孤山). 서울 출신으로 아버지는 좌상 두표(斗杓)이며, 어머니는 사간 최동식(崔東式)의 딸이다. 일찍이 부조(父祖)의 세력을 믿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하옥된 바 있으나 인조의 특명으로 방면되었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에 기용되고, 1652년(효종 3) 지평, 정언, 문학을 역임하였다. 1654년 세자시강원사서로 있을 때 시폐 열가지를 상소하여 왕의 우비(優批)를 받았다. 이듬해 장령이 되고 세자시강원필선을 거쳐, 1656년 경상도에 전대미문의 흉년이 들었을 때 왕명으로 진구어사(賑救御使)가 되어 열 읍을 순회하면서 민정을 보살피고 기민을 구제하여 은덕을 폈다. 그해 헌납을 지내고 이듬해 동래부사가 되어 어려운 왜금(倭禁)의 책임을 완수하였다. 1659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그해 사우(祠宇)의 신주(神主)를 도둑맞는 일이 생겨서 추고(推考)의 처분을 받았다. 1662년(현종 3) 병조참지가 되고 이듬해 좌부승지를 거쳐, 1664년 우승지에 올랐다. 성격이 쾌활하여 일을 처리함에 과단성이 있었고, 민정을 잘 살펴 국민과 조정에 교량구실로 시폐를 논하여 시정을 촉구하였다. 한때 권력을 남용하 였다는 반대세력의 비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명관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