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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03일(토) | ![]() |
乙巳年 庚辰月 壬申日 | 미래를 열어주는 정통역학 사이트 ㆍ 인터넷 사주 궁합 작명 전문 ㆍ 사주포럼 ㆍ www.SajuForum.com ♬ 즐겨찾기에 추가 |
엽전 삼천냥에 백학은 날아가고
언성군 김중만 장군대좌의 실증
면면(綿綿)한 복지의 땅 원주원씨(原州元氏) 세거지
동래정씨 시조 안일호장(安逸戶長) 정문도공(鄭文道公) 묘
청송심씨(靑松沈氏) 삼한국부인(三韓國夫人) 안씨(安氏) 묘
보은(報恩)의 땅, 곡성(谷城)의 세우와용(細雨臥龍)
엽전 삼천냥에 백학은 날아가고
![]() 문양리에서 바라본 간대산 조선조 말엽 현종, 철종년간에 이 고장에는 전의이씨 선비하나가 살고 있었다. 평소 심성이 순량하고 효행이 돈독한외에 자질이 총민하여, 경사와 문학에 밝았으나 어찌된 셈인지 과거는 볼 때마다 떨어져서 자연 집안은 가난하고 조석간데가 없게 되었다. 한편 당시에 내표일대에는 풍수에 전통한 가권(賈勸)이란 스님이 있어서 인근에 명혈을 많이 소점해주며 선행을 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어느 날 가권스님은 이선비댁으로 탁발을 하러 들러보니 이 선비의 처지가 너무나 간구한 것을 보고 넌지시 제안을 하였다. “선비님같은 인품과 재주를 가지시고도 뜻을 못 얻어 허구헌날 이처럼 고생만 하시다니, 매우 뵙기 민망합니다. 소승이 한군데 쓸만한 땅을 보아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묘를 쓰시고 일후에 발복을 하신다음 폐백으로 엽전 삼천냥만 주실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자리는 장후 3년이면 대과급제를 하고 5년 이내에 뫼산(山)자 들어가는 고을의 원(사또)를 하시게 될 터이니 그리 아시고 부디 약속을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하였다. 그리하여 급한김에 이 선비는 폐백삼천냥을 후불로 하기로 하고 택일하여 가권스님이 지정하는 장소에 부친산소를 모시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연전연패 낙방만 하던 과거시험에 이 선비는 보기 좋게 급제를 하였다. 꿈만 같았다. 가권스님의 예언이 적중한 것에 놀라고 감사하였다. 과거급제 후 조정내직에서 미관말직으로 2년여를 보낸 후 드디어 이선비 아니, 이 주부는 아산현감을 제수받았다. 허구 많은 지방 수령중에 뫼산자가 붙은 아산현감 이라니 이주부는 놀랍기만 하였다. 그러나 한편 이사또는 속으로 가권스님에게 폐백 삼천냥 지불할일이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받는 녹봉에 비하면 삼천냥이란 이만저만 거금이 아니어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는 쉽게 조달할 수 없는 액수이었다. 지방수령을 제수받은 기쁨도 잠깐이고 자나 깨나 폐백 줄 일이 걱정이었다. 도임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사또는 병방아전을 불러 지시하되 관아문을 지키는 군졸에게 명을 내려 불문곡직하고, 스님중의 관아출입을 일체 금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로부터 삼사삭이 지난 어느 날 아산관아에는 드디어 가권스님이 나타나서 본관사또의 면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으나, 문을 지키던 군리는 지시받은대로 스님의 출입을 금지하는 동시, 그를 밖으로 밀어내어 멀리 쫒아 버렸다. 이 같은 처사가 본관사또의 계획된 수작이란 것을 모를리 없는 가권스님은 이내 고샅으로 나가 목로주점에 가서 곡차를 흠씬 마시고는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며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흥! 내가 돈이 욕심나서 찾아온 줄 알고 문전박대를 하지만, 중놈이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 사또가 복이 그만이라 망년된 짓을 하는 거여. 5년 전만 해도 내가 공부가 부족하여 감사가 나올 자리를 그르쳐서 고작 현감을 만들고 말았는데, 지금이라고 한금정(金井)만 올려 쓰면 감사 한자리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을 쯧쯧...” 어쩌고 하며 큰소리로 떠벌이는 것이었다. 이때, 이 사또는 이속으로부터 웬 스님하나가 와서 사또 면회를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여 보냈다는 보고를 받고는 통인을 시켜 스님의 뒤를 밟게 하였다. 그자가 무슨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아오라는 것이었다. 통인놈이 돌아가서 들은 바대로 보고하자 이 사또는 감사가 돌 수 있다는 말에 또 다시 구미가 발동하였다. 그는 통인을 앞세우고 스님을 찾아 나섰다. 사또는 스님을 보자, 대사께서 오신 줄 모르고 아랫것들이 무례를 저질러서 대단히 송구하다는 것과 이왕 이곳까지 오셨으니 객사로 들어가셔서 하룻밤 묵어가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가권스님은 사또를 따라 관아로 들어간 뒤 폐백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은 채 자신의 부족으로 감사가 나올 자리를 현감에 그치에 하였으니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과와 함께 묘소 위쪽으로 한금정만 올려 쓰면 반드시 감사가 나올 수 있으니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면례를 하자는 것이었다. 욕심이 앞을 가린 이 사또는 자기의 소행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권스님이 권하는 대로 날을 택일하여 부친상소를 이장하기에 이르렀다. 서산 음암에서 아산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어서 일을 속히 진행시킬 수 있었다. 이장을 하는 날은 날씨마져 청명한데 동네사람과 친척들을 동원하여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파묘를 하고 횡댓장을 떠드는 순간 “펑”하는 소리가 나며 하얀 백학 한 마리가 솟아오르더니 푸른 하늘을 향하여 너울너울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일이 잘못된 줄로 짐작한 이 사또가 가권스님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온데간데없어지고 솔숲사이로 높은 산꼭대기 어디에선가 “엽전 삼천냥 떠나간다”는 소리가 메아리도 없이 들려왔다. 만사가 휴의였다. 파던 묘를 부랴부랴 다시 메웠지만 사또는 어딘가 찜찜하였다. 혹자는 봉황새가 날아갔다고도 한다. 이상은 야담과 실화가 아닌 전설과 실화 중간쯤 되는 이야기로 믿거나 말거나 이다. 사또도 사또이지만 약속을 어겼다고 보복을 한 가권스님도 스님으로서 온당한 처사는 아닐 것으로 본다. 날아간 학은 언제쯤이나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그 묘소에 올라보면 래맥이 중후장대하고 주변산세가 빼어나서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여음이 있을 것만 같다. 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전의 이공의 후예들에게 길이 무궁한 발복이 있을 것을 기원한다. 참고삼아 이묘소의 후예중에는 민주당 때 서산에서 참의원을 역임한 이기세공(李琦世公)이 있어 가문의 영광을 다시 한번 드러낸 일이었다. 정통 풍수지리 / 양택풍수 음택풍수 / 풍수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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