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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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인 족보를 근거로 대조해 가며 확인하는 방법도 실효를 거둔다.
    보은(報恩)의 땅, 곡성(谷城)의 세우와용(細雨臥龍)

    신덕린(申德隣) 선생의 재궁인 치일재
    전남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남록에는 여말(麗末)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분인 순은(醇隱) 신덕린(申德隣) 선생의 묘소가 있다.
    고려가 망하자 유신칠십이인은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하는데 반대하여 두류산 밑에 은거하여 세상일에 담을 쌓고 두문동이라 하였는데, 전국으로 분산되었다. 이때 순은은 역시 두문동칠십이인의 한사람인 아들 호촌 신포시와 더불어 광주 서석산을 거쳐 남원 땅으로 피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졸(卒)하였는데, 아들 신포시가 부친상을 당하자 임시로 초빈(草殯)한 후에 인근지역(隣近地域)으로 구산(求山)을 하러 나섰다.

    이곳저곳 여러 달을 헤매다가, 옥과(玉果)땅, 지금의 오산면 가곡리에 다달아 주위 지세를 살펴보니 산색이 수려하고 지가가 윤택한데, 여러 줄기 산내룡이 늘어지니 가운데 정기가 응결된 혈처가 하나 있었다. 신포시(申包翅)가 울창한 숲 속, 어우러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주봉에 올라 형세를 관망하니 검장산에서 출발한 산맥이 분마처럼 북으로 치달려, 오기봉을 세 후에 다시 동북방으로 해서 갑묘로 박환한 후 회룡고조하여 계축으로 입수가 되었는데 왼편으로 본신청룡이 학슬, 봉요로 중중하고 오른쪽으로 백호가 다정하게 머리를 숙여 엎드렸다. 인갑득에 신파. 여기에 묘고향으로 계좌정향을 하면 좋기는 더없이 좋겠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산 밑에 암자가 있어 그로 인해 묘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덧 짧은 가을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 가자 산중에서 난감해진 신포시는 하룻밤을 묵어가기 위해 암자를 찾아들었다. 이때 암자에는 수도하는 스님이 다섯 사람 있었는데, 주지는 다행히 나그네에게 유숙을 허락하고 빈방을 하나 내어 주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쉬기 위해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주지스님이 가만히 나그네의 방으로 찾아 왔다. 그는 공손히 합장 배례를 한 후, 이렇게 물었다. “영감님께서는 저를 못 알아보시는지요? 제가 바로 개경에 사실 때에 대감님댁 종놈 만득이 옳습니다. 대감님댁이 두문동으로 들어가신 후 쇤네는 갈 곳이 없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근 이십면 만에 이런 누추한 곳에서 영감님을 뵈오니 그저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그간 대감님께서는 안녕하신지요? 신포시가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실로 얼마만인가 예전에 개경에 살 때 집에서 부리던 젊은 노비 아이가 아닌가? 그때서야 반색을 하며 눈이 어두워 미처 못 알아보았음을 사과하고 그간 고생이 얼마나 많았겠느냐고 위로의 말을 하였다.

    이리하여 나그네와 스님은 옛 이야기를 하며 오래간만에 회포를 푸는 중, 스님은 신포시에게 어찌하여 그곳까지 이르렀는지를 물었다. 그는 남원 땅에 와서 부친상을 당하고 구산을 하러 다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과 이 암자 뒤에 쓸만한 자리가 하나 있기는 한데 앞에 절이 있으니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신포시에게 다가가 앉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영감님 그러시다면 주저 마시고 소망대로 대감님을 이리로 모십시요. 나머지는 소승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늘날 쇤네가 비록 불자가 되어 있으나 저희 부자가 개경에서 사는 동안 후덕하신 대감님의 은혜를 두터이 입었는데 오늘에야 그 은혜에 보답하게 되나 봅니다.”하고 헤어졌다.

    그런 후, 얼마 있어 주지스님은 스님들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 암자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당에는 칠층탑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런 뒤에 신포시가 그곳에 부친 순은공을 장례하니, 이곳이 바로 세우와룡(細雨臥龍)의 명당으로 고려신씨는 이후로 조선조에서 상신 삼인에 대제학 삼인, 부마 이인, 91명의 문과급제자와 103명의 무과급제자를 배출하는 융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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