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황경(黃瓊)시조 황경(黃瓊)은 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벼슬은 시중을 지냈다. 그후 10세손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에 전중감으로 이의방의 난이 있은 후에 장수로 낙향 하였고, 15세손 황감평이 후학을 위한 덕망있는 학자 였다는 것 외에는 18세손 황석부(黃石富) 까지는 고증할 자료가 없다. 중시조 황석부는 황희(黃喜)의 증조부로 사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황석부를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인물
- 황희(黃喜) : 조선시대의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정승의 지위에 24년간, 그 중 영의정에 18년간 있으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 치적을 쌓았으며, 소신이 굳으면서도 원만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뽑히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 황치신(致身): 황희의 아들. 중추부판사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올랐다.
- 황수신(守身): 황희의 아들.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 황정욱(廷彧):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광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지천집(芝川集)'이 있다.
- 황경원(景源): 대제학을 비롯해 이조, 예조,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 황맹헌(孟獻): 황여헌(汝獻), 황효헌(孝獻) 3형제: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다.
- 황윤길(允吉): 선조 때 일본에 다녀와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예고했다.
- 황엽(曄): 숙종 때의 학자로 의학뿐 아니라 지리에 정통하여 '여지도(輿地圖)'를 만들고 '지도연의(地圖衍義)'를 저술했다.
- 황승원(昇源) : 순조 때의 명신 , 한말의 야사(野史)를 엮었다.
- 황현(玹) : '매천야록(梅泉野錄)'의 저자이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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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황위(黃暐, 1605生) : 문과(文科) 인조16년(1638) 정시 갑과 장원급제황명한(黃明漢, 1771生) : 문과(文科) 순조2년(1802) 정시3 갑과 장원급제황혁(黃赫, 1551生) : 문과(文科) 선조13년(1580) 별시 갑과 장원급제황붕(黃鵬, 1551生) : 문과(文科) 선조16년(1583) 정시 병과황박(黃博, 1551生) : 문과(文科) 중종27년(1532) 별시 을과황이장(黃爾章, 1653生) : 문과(文科) 숙종38년(1712) 정시 병과황석(黃奭, 1569生) : 문과(文科) 광해군3년(1611) 별시 병과황익청(黃益淸, 1589生) : 문과(文科) 인조8년(1630) 식년시 을과황성창(黃誠昌, 1589生) : 문과(文科) 성종22년(1491) 별시 을과황처호(黃處浩, 1707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알성시 병과 등 모두 16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5명, 무과 16명, 생원진사시 98명, 의과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세거지
-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대전리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 충남 보령군 웅천읍 구룡리, 소황리
- 전북 무주군 부남면 유평리
-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 경북 경산군 안심읍 동내동
- 전남 장흥군 대덕면 덕산리
- 경북 문경군 산북면 대하리
- 전북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 전북 남원시 사매면 수월리
-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항렬자
17世
주(周) | 18世 의(義) | 19世 연(淵) | 20世 (示변) 인(仁) | 21世 (土변) 하(夏) |
22世 (水변) 규(圭) | 23世 (人변) 상(商) | 24世 (火변) 영(永) | 25世 (土변) 진(震) | 26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8세손은 17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우평현(雨平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택현(高澤縣)으로 개칭하여 벽계군(壁溪郡: 長溪縣)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 장수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남원부(南原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장계감무(長溪監務)가 이 지역을 함께 다스렸다. 1392년(태조 1)에 장수현을 복구하여 장계현을 병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장수군(長水郡)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장수군이 되었다. 1979년에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장수황씨는
1985년에는 총 29,971가구 126,746명,
2000년에는 총 45,567가구 146,57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