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정랑 윤준(允峻)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에 소윤 윤원형(尹元衡)이 정순붕(鄭順朋), 이기(李○) 등과 함께 대윤 윤임(尹任), 유인숙(柳仁叔), 유관(柳灌) 등을 숙청하고, 자기편에 가담하지 않은 권벌(權○), 이언적(李彦迪), 노수신(盧守愼) 등을 축출할 때 권벌, 이언적을 두둔하였다 하여 부처되었다가 1551년 풀려났다.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고 윤원형이 실각하여 죽자,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직첩이 환급되어 찰방이 되었고, 1567년에 성균관사예를 지냈다. 본래 재주가 있었으나 바른말을 잘하고 이언적, 권벌 등 영남학자들을 숭앙하여 그들의 정의로운 노선을 지지하고, 정순붕과 이기 등을 싫어하여 마침내 화를 입고 불우한 세월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