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최문한(崔文漢), 최필달(崔必達), 최흔봉(崔欣奉)강릉 최씨는 시조를 다르게하는 3계통으로 나뉘어진다.
[ 강화계 ]
시조 최문한(崔文漢)은 고려 문과에 급제한 최전(崔佃)의 후손이다. 고려말 두문동 72현으로 유명한 최문한은 충숙왕의 부마(사위)로 이성계가 왕위를 빼앗고 조선을 개국하자 강릉 산 속 깊숙히 은거하여 살았다. 후손들이 은거한 강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 경주계 ]
시조 최필달(崔必達)은 고려 개국때 태조를 도와 삼한벽상공신으로 좌정승이 되고 경원(강릉) 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 전주계 ]
시조 최흔봉(崔欣奉)은 고려 태조의 부마이다. 그의 12세손 최입지가 고려말에 문하평리 상호군을 지내면서 공을세워 강릉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인물
[ 경주계 ]
- 최치운(致雲) : 시조 최필달의 17세손으로 세종 때의 명신이었으며 특히 형옥(刑獄)에 밝아 왕명을 받고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였다.
- ·최수성(壽城) : 최치운의 증손으로 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시문, 서화, 음률, 수리(數理) 등 다방면에 뛰어난 당대의 기재절필(奇才絶筆)이었다.
[ 전주계 ]
- 최자점(自霑) : 조선 세조 때 이조참판을 지냈다.
- 최세건(世楗) : 성종 때 이조판서을 지냈다.
- 최응천(應天) : 인조 때 진주목사을 지냈다.
- 최규하(崔圭夏) : 제10대 대통령(재임 1979~1980)을 지냈다.(계통은 불분명)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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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최세절(崔世節)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별시2 갑과 장원급제최기백(崔基○, 1575生) : 문과(文科) 인조13년(1635) 증광시 병과최상은(崔相殷, 1644生) : 문과(文科) 숙종22년(1696) 식년시 병과최황(崔○, 1539生) : 문과(文科) 선조21년(1588) 식년시 병과최점(崔店, 1539生) : 문과(文科) 세종5년(1423) 식년시 동진사최일성(崔一星, 1695生) : 문과(文科) 영조5년(1729) 식년시 병과최호인(崔浩人, 1788生) : 문과(文科) 순조11년(1811) 정시 병과최문활(崔文活, 1600生) : 문과(文科) 인조8년(1630) 식년시 병과최환(崔○, 1600生) : 문과(文科) 연산군4년(1498) 식년시 병과최명손(崔命孫, 1600生) : 문과(文科) 세조8년(1462) 식년시 정과 등 모두 19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1명, 무과 17명, 생원진사시 123명, 역과 4명, 의과 5명, 음양과 8명, 율과 1명, 주학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세거지
[ 전주계 ]
현재 삼척, 양양, 평창 등지에 수천 가구가 살고 있다.
항렬자
- 강화계
17世
식(植) | 18世
찬(燦) | 19世
길(吉) | 20世
선(善) | 21世
영(永) |
22世
근(根) | 23世
용(容) | 24世
기(起) | 25世
탁(鐸) | 26世
원(源) |
27世
래(來) | 28世
희(熙)
| 29世 - | 30世 - | 31世 - |
- 경주계
40世
형(亨) | 41世 중(重) | 42世 정(貞) | 43世 중(重) | 44世 록(祿)
|
- 전주계
27世
계(桂) | 28世 병(炳) | 29世 규(奎) | 30世 홍(弘) | 31世 근(根) |
32世 철(澈) | 33世 동(東) | 34世
| 35世 - | 36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8세손은 27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강릉강릉(江陵)은 기원전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리었다. 550년(신라 진흥왕 11)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639년(선덕여왕 8)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 5) 말갈족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하여 도독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 그 후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 공신 김홍취의 고향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1789년(정조 12)에 강릉부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릉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 강릉읍·성덕면·경포면을 통폐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을 강릉시로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릉최씨는
1985년에는 총 30,940가구 132,300명,
2000년에는 총 44,704가구 140,85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