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광필(崔光弼)
  • 강릉최씨(江陵崔氏),  출생~사망 : 1553 ~ 1608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정로(廷老). 아버지는 감찰 영이며, 어머니는 목함(睦○)의 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이 되고,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2년 예안현감이 되었고, 1604년 봉상시주부를 거쳐, 1606년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가 되었다. 1607년 강원도도사 재직시 시폐소(時弊疏)를 올렸다. 즉, 강원도 주민들이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극도로 곤궁한데도 왕실은 궁궐축조에 필요한 동량(棟樑)을 조달하고자 경차관(敬差官)을 파견하여 도민들을 가혹하게 독촉하여 이들은 농사를 전폐하다시피하고 선비나 노비까지도 역사에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당시의 민폐를 올바로 지적하였다. 이어 궁궐축조의 중지를 주장하였으나 왕실에 의하여 묵살되었고, 이 상소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623년 이이첨(李爾瞻)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정영국(鄭榮國), 신광업(辛光業) 등과 함께 주살되었다. 사관(史官)의 인물평에 따르면 오졸(迂拙)하지만 효행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