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임호(任灝)시조 임호(任灝)는 중국 소흥부 출신으로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지내고 국난이 일어나자 망명하여 정안(장흥) 천관산 아래에서 살았다. 그의 아들 임의(任懿)는 숙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임의의 아들 임원후(任元厚)는 고려 인종의 왕비인 공예왕후의 아버지로 의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정안(장흥) 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장흥으로 하였다.
인물
- 임극정(克正), 임유(濡: 초명은 克仁), 임극충(克忠), 임부(溥) : 임의의 아들.
- 임경순(景恂), 임경숙(景肅), 임경겸(景謙) : 유의 아들.
모두 고려시대에 정3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고 학자와 명신으로 유명하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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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임제원(任濟遠, 1718生) : 문과(文科) 영조31년(1755) 정시2 을과임계영(任啓英, 1718生)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별시 병과임경관(任鏡觀, 1693生) : 문과(文科) 영조1년(1725) 정시2 병과임종선(任從善, 1693生)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동진사임백균(任百鈞, 1693生) : 문과(文科) 명종16년(1561) 식년시 병과임일원(任一源, 1723生) : 문과(文科) 영조30년(1754) 증광시 병과임장원(任長源, 1734生) : 문과(文科) 영조49년(1773) 증광시 병과임택(任擇, 1734生)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증광시 정과임수창(任壽昌, 1651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임국형(任國衡, 1656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 등 모두 3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2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3世
석(錫) 현(鉉) | 24世 태(泰) | 25世 모(模) 식(植) | 26世 병(炳) 형(炯) | 27世 규(圭) |
28世 종(鍾) | 29世 수(洙) | 30世 영(榮) 상(相) | 31世 환(煥) 열(烈) | 32世 교(敎) |
33世 탁(鐸) | 34世 한(漢) | 35世 근(根) | 36世 형(炯) | 37世 달(達) |
38世 호(鎬) | 39世 - | 40世 - | 41世 - | 42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4세손은 23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장흥장흥(長興)은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오아(烏兒)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현종 때에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1265년(원종 6)에 다시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장흥부로 강등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수령현의 중령산에 성을 쌓고 중심지로 했으며, 1413년(태종 13)에 장흥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52년(효종 3) 장흥현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장흥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웅치(熊峙)·회천(會泉) 2개면이 보성군에 이관되었으며, 1936년 부동면(府東面)을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南上)·남하(南下) 양면을 용산면(蓉山面)으로, 고읍면(古邑面)을 관산면(冠山面)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하였고, 1980년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장흥임씨는
1985년에는 총 7,777가구 34,141명,
2000년에는 총 7,652가구 24,52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