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함규(咸規)시조 함규(咸規, 시호는 양후)는 고려의 통합삼한익찬 개국공신으로 광평시랑 평장사를 지내고 몽고군 침입시 대사마대장군을 지냈다.
그의 선조는 당나라에서 병부상서 평장사를 역임하고 우리나라에 귀화한 함혁(咸赫)이라고 한다. 함혁은 익화(양근)자사 재직시 선정을 베풀었고 그가 쌓은 석성의 둘레가 2만9천5십8자나 되었다고 한다.
함혁의 후손 함신(咸信, 일명 함훈)이 호부상서를 지내고 785년(신라 원성왕 1년) 김주원(강릉 김씨 시조)을 따라 강릉에 가서 살게 됨으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후의 기록은 없으므로 함규를 시조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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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함헌(咸軒) : 문과(文科) 중종29년(1534) 별시 병과함우복(咸遇復, 1835生) : 문과(文科) 고종17년(1880) 증광시 병과함사겸(咸士謙, 1730生) : 문과(文科) 영조32년(1756) 식년시 병과함의신(咸義信, 1598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함이성(咸以成, 1616生) : 무과(武科) 현종1년(1660) 증광시 병과함자정(咸自正, 1634生) : 무과(武科) 효종7년(1656) 별시 병과함경록(咸卿祿, 1600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함득신(咸得信, 1608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함대기(咸大起, 160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함응길(咸應吉,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등 모두 2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10명, 생원진사시 14명, 주학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32世
달(達) 태(泰) | 33世 종(宗) | 34世 택(澤) | 35世 정(楨) 철(澈) | 36世 영(榮) 근(根) |
37世 기(基) 란(瀾) | 38世 진(鎭) 기(基) | 39世 - | 40世 - | 41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3세손은 32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강릉강릉(江陵)은 기원전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리었다. 550년(신라 진흥왕 11)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639년(선덕여왕 8)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 5) 말갈족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하여 도독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 그 후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 공신 김홍취의 고향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1789년(정조 12)에 강릉부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릉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 강릉읍·성덕면·경포면을 통폐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을 강릉시로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릉함씨는
1985년에는 총 13,265가구 54,980명,
2000년에는 총 17,662가구 56,71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