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화가. 호는 동암(東巖). 첨지중추부사 경룡(慶龍)의 아들이며, 화원(畵員) 세휘(世輝)의 아버지이다. 도화서(圖畵署) 화원으로 교수(敎授)를 지냈다. 1682년(숙종 8)에 윤지완(尹趾完), 박경후(朴慶後), 이언강(李彦綱) 등 통신사 일행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 일본측 문헌인 '고화비고 古畵備考'에는 그의 성(姓)인 함(咸)이 성(成)으로 잘못 기록되었으나 그의 '죽국도 竹菊圖'에 죽암(竹庵)의 찬(贊)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작품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