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설호진(薛虎珍)시조는 설호진(薛虎珍), 혹은 설거백(薛居伯)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주 금강산에 내려와 습비부(習比部)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신라가 생기기 이전(BC 57년)의 박혁거세 탄생설화에 나오는 6촌장의 한사람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호진(虎珍)이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그후 32년(유리왕 9년)에 6촌이 6부로 개칭을 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쳐 불렀고 설씨 성을 하사받았다. 습비부가 경주에 속하므로 본관을 경주로 하고, 시조를 설지덕(薛支德)으로 하였다.
36대손인 설자승(薛子升)이 1124년(고려 인종 2) 예부시랑으로 순화백(淳和伯: 지금 순창)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바꾸었으나 설귀창을 파조로 하는 개성파는 원래의 경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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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설위(薛緯)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동진사설경관(薛慶觀, 1736生) : 문과(文科) 정조10년(1786) 식년시 병과설관징(薛觀徵, 1630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설시민(薛時敏, 1604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설언룡(薛彦龍, 1534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년(1568) 증광시 삼등설거일(薛居一, 162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1년(1660) 식년시 삼등설당(薛○, 162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9년(1534) 식년시 삼등설욱준(薛煜俊, 1846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증광시 삼등설장영(薛長榮, 160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0년(1642) 식년시 삼등설원개(薛元凱, 1519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년(1568) 증광시 삼등 등 모두 1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8명, 율과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60世
규(奎) | 61世 진(鎭) | 62世 수(洙) | 63世 동(東) | 64世 환(煥) |
65世 재(在) | 66世 석(錫) | 67世 태(泰) | 68世 식(植) | 69世 영(榮) |
70世
용(瑢) | 71世 종(鐘) | 72世 윤(潤) | 73世 병(秉) | 74世 열(烈) |
75世 기(基) | 76世 용(鏞) | 77世 영(永) | 78世 근(根) | 79世 병(炳)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1세손은 60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순창(淳昌)은 전라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쳐 적성현(赤城縣)·구고현(九皐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하게 되었다.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淳昌: 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년(현종 9) 남원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국사(國師)인 정오선사(丁午禪師)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 초에서도 계속 순창군(淳昌郡)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에서 독립하였고, 1896년 도제 실시로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임실군과 남원군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35년 구암면(龜巖面)과 무림면(茂林面)을 통합하여 구림면으로 개편, 11개 면이 되었다. 1979년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창설씨는
1985년에는 총 5,863가구 24,181명,
2000년에는 총 8,607가구 27,92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순창설씨 대종회 : http://www.seo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