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박서(朴犀)시조 박서(朴犀, 호는 죽계, 시호는 충정, 자는 양종)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장군으로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넷째 아들인 박언립(죽성대군)의 11대손이다. 그가 1231년(고려 고종 18년) 서북면 병마사로 있을 때 몽고의 장수 살리타이(撒禮塔)가 쳐들어와 철주를 함락하고 구주를 공격하자 김중은, 김경손 등과 함께 구주에서 각종 무기로 공격해 오는 몽고군을 한 달동안의 격전 끝에 물리쳤다. 몽고군이 구주를 포기하고 개성을 먼저 함락시켜 고종의 항복을 받아내고 철수하는 길에 다시 구주를 공격하는 몽고군을 대파하여 몽고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이때 몽고 장수 살리타이는 '박서같은 장수는 처음 봤다'고 하였다. 그 뒤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고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졌다.
원래 죽산박씨였으나 후손들이 죽산박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음성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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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박계금(朴繼金) : 문과(文科) 세조8년(1462) 별시 정과박숙달(朴叔達) : 문과(文科) 세조8년(1462) 식년시 정과박숙창(朴叔暢) : 문과(文科) 세조11년(1465) 춘당대시 정과박곤(朴鯤) : 문과(文科) 연산군7년(1501) 식년시 병과박광옥(朴光玉, 1526生) : 문과(文科) 선조7년(1574) 별시 을과박종언(朴宗彦, 1716生) : 문과(文科) 영조30년(1754) 증광시 병과박숙진(朴叔○, 1716生)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식년시 병과박성한(朴聲漢, 1763生) : 문과(文科) 순조2년(1802) 정시 병과박내양(朴來陽, 1770生) : 문과(文科) 순조23년(1823) 정시 병과박붕(朴鵬, 1770生)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을과 등 모두 3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0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25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59世
시(時) | 60世 현(鉉) 소(素) | 61世 제(濟) 윤(潤) | 62世 근(根) 채(采) | 63世 용(容) 희(熙) |
64世 기(基) | 65世 상(商) | 66世 태(泰) | 67世 동(東) | 68世 환(煥) |
69世 규(圭) | 70世 호(鎬) | 71世 준(浚) | 72世 식(植) | 73世 병(炳)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0세손은 59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음성음성(陰城)은 충청북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고구려 장수왕 때 잉홀현(仍忽縣)이라 하였고,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신라의 영토가 되어 757년(경덕왕 16) 음성현(陰城縣)으로 고쳐서 흑양군(黑壤郡: 鎭川)에 속하게 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중원도(中原道) 진주(晉州)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 양광도(陽廣道) 충주목(忠州牧)에 속하게 되었으나 1356년(공민왕 5) 충청도(忠淸道) 국원경(國原京) 음성현으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와서 현감(縣監)을 두었고, 1592년(선조 25) 폐현되어 청안현(淸安縣)에 속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에 다시 음성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음성군으로 승격하였고, 1896년 충청북도로 이관하였다. 1956년에 군내면이 음성읍으로, 1973년에 금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음성박씨는
1985년에는 총 1,562가구 6,317명,
2000년에는 총 2,149가구 7,09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