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진총후(陳寵厚)진씨는 원래 중국 송나라 때 복주 출신인 진수가 우윤 벼슬을 지내다 국난이 일어나자 우리나라에 건너와 여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더걍산 아래 정착하여 살았는데 그의 후손인 진총후가 고려 예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여양군에 봉해져서 그의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여양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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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진복창(陳復昌) : 문과(文科) 중종30년(1535) 별시3 갑과 장원급제진병섭(陳秉燮, 1834生) : 문과(文科) 철종2년(1851) 알성시 을과진두병(陳斗柄, 1663生) : 문과(文科) 숙종28년(1702) 식년시 병과진문한(陳文翰, 1663生)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식년시 병과진상립(陳尙立, 1585生) : 문과(文科) 인조7년(1629) 별시 병과진종시(陳宗蓍, 1843生) : 문과(文科) 고종4년(1867) 함경도도과 병과진명한(陳溟翰, 1649生) : 문과(文科) 현종14년(1673) 식년시 병과진식(陳寔, 1519生) : 문과(文科) 명종2년(1547) 알성시 병과진익한(陳翼漢, 1677生) : 문과(文科) 숙종40년(1714) 증광시 을과진갑현(陳甲鉉, 1874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별시 병과 등 모두 4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3명, 무과 4명, 생원진사시 24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4世
하(夏) | 25世 성(成) | 26世 범(範) 희(熙) | 27世 용(庸) 광(廣) | 28世 장(章) 언(彦) |
29世 수(壽) 선(善) | 30世 호(昊) 환(奐) | 31世 익(翼) 우(遇) | 32世 원(元) 구(九) | 33世 상(商) 남(南) |
34世 녕(寧) 전(殿) | 35世 재(載) 무(茂) | 36世 면(勉) 기(紀) | 37世 도(度) 경(慶) | 38世 달(達) 재(宰) |
39世 성(聖) 정(廷) | 40世 규(揆) 발(發) | 41世 기(冀) 용(用) | 42世 집(執) 광(光) | 43世 주(周) 동(同) |
44世 백(百) 형(衡) | 45世 함(咸) 의(義) | 46世 용(龍) 선(選) | 47世 상(庠) 곽(廓) | 48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세손은 24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洪城) 남쪽에 위치하는 장곡면(長谷面) 일대의 옛 지명이다. 백제시대에 사시량현(沙尸良縣: 沙羅)이라 부르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량(新良)으로 개칭하여 결성군(潔城郡: 結城)의 관할로 두었다. 고려 초에 여양현(驪陽縣: 黎陽縣)으로 바뀌었고, 1018년(현종 9)에 운주(運州: 洪城)로 폐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양진씨는
1985년에는 총 24,189가구 100,233명,
2000년에는 총 30,492가구 97,3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