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조응선(趙應善)은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왕에게 직간(直諫)하다가 평산(平山)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그 후 계보가 전하지 않아 후손들은 시조의 배소지인 평산을 본관(本貫)으로 삼고 조선시대에 참봉(參奉)을 지낸 조충백(趙忠白)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를 이어왔다.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충백(忠白)의 아들 복린(馥麟)이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지냈고, 후손 발(發)의 아들 호문(好問)은 1480년(성종 11)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그 후 평산 조씨는 많은 학자(學者)를 배출하여 가문을 더욱 빛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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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영후(趙英珝) : 문과(文科) 연산군4년(1498) 식년시 병과조팽년(趙彭秊, 1549生)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식년시 병과조병조(趙炳祚, 1714生) : 문과(文科) 영조20년(1744) 춘당대시 병과조일남(趙一男, 1607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조환(趙環, 1520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삼등조홍윤(趙弘胤, 1754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49년(1773) 증광시 이등조팽년(趙彭年, 1549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6년(1573) 식년시 삼등*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3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평산평산(平山)은 황해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평주(平州)의 다른 이름이다. 고구려 때에는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 하였으며, 747년(신라 경덕왕 6)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783년(선덕여왕 4)에는 진(鎭)을 두고 한주(漢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명칭을 평주로 바꾸었고, 성종 때 방어사(防禦使), 현종 때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엔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白川)에 잠시 예속되었다가 충렬왕 때 다시 복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으로 바꾸고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산군으로 개편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서부의 일부를 연백군에 이속시켰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산조씨는
1985년에는 총 1,285가구 5,543명,
2000년에는 총 996가구 3,1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