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장순익((張順翼)시조 장순익(시호는 충정)은 장정필의 5세손으로 장지현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고려 때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으로 단양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단양을 본관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 해당 인물을 클릭하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아(張莪) : 문과(文科) 세종8년(1426) 식년시 동진사장우추(張宇樞, 1694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식년시 병과장형운(張亨運, 1551生) : 문과(文科) 선조13년(1580) 별시 병과장진충(張振○, 1623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장덕문(張德文, 1595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장하룡(張河龍, 1607生) : 무과(武科) 인조22년(1644) 별시 을과장천강(張天江, 1591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장응삼(張應三, 1601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장의원(張義元, 160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장경(張景,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등 모두 4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14명, 생원진사시 27명, 의과 1명, 율과 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37世
용(用) 보(甫) | 38世 봉(鳳) 구(九) | 39世 남(南) 병(柄) | 40世 녕(寧) 행(行) | 41世 성(成) 성(盛) |
42世 기(起) 희(熙) | 43世 상(庠) 경(慶) | 44世 재(宰) 화(華) | 45世 중(重) 정(廷) | 46世 규(揆) 호(昊) |
47世 학(學) | 48世 동(東) | 49世 인(寅) | 50世 경(卿) | 51世 진(振) |
52世 범(範) | 53世 - | 54世 - | 55世 - | 56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8세손은 37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 지역의 옛 행정구역명으로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 堤川)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단양장씨는
1985년에는 총 7,365가구 30,521명,
2000년에는 총 10,541가구 33,29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