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복지겸(卜智謙)시조 복지겸(卜智謙)은 궁예가 세운 태봉나라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년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신숭겸, 배현경,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추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한 개국공신대장군으로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선조는 중국 당나라때의 학사로서 신라말에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와서 면천(충남 당진군 순성면)에 정착하여 당시 서해안에 들끓던 해적들을 소탕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면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 시조의 묘소는 충남 당진군 순성면 양유리에 제단이 있으며 음력 10월 1일 향사한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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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복여(卜予) : 문과(文科) 세종17년(1435) 식년시 동진사복내상(卜來相, 1789生) : 문과(文科) 순조19년(1819) 식년시 병과복희달(卜禧達, 1789生) : 문과(文科) 연산군4년(1498) 식년시 병과복태형(卜台衡, 1729生) : 문과(文科) 영조51년(1775) 별시 병과복태진(卜台鎭, 1732生) : 문과(文科) 영조35년(1759) 식년시 병과복승정(卜承貞, 1732生) : 문과(文科) 세조11년(1465) 춘당대시 병과복내정(卜來禎, 1772生) : 문과(文科) 순조10년(1810) 식년시 을과복재영(卜載榮, 1828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4년(1867) 식년시 일등*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7명, 생원진사시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1世
승(承) | 22世 세(世) | 23世 우(雨) | 24世 연(淵) | 25世 길(吉) |
26世 정(廷) | 27世 지(之) | 28世 옥(玉) | 29世 태(台) | 30世 경(景) |
31世 래(來) | 32世 흠(欽) | 33世 윤(潤) | 34世 래(來) | 35世 옥(玉) |
36世 태(台) | 37世 경(景) | 38世 래(來) | 39世 흠(欽) | 40世 윤(潤) |
41世 래(來) | 42世 면(勉) 회(會) 종(鍾) | 43世 용(溶) 영(泳) 순(洵) 승(承) | 44世 - | 45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세손은 21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면천(沔川)은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면천면 일대를 지칭하던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혜산군(槥山郡)이라 불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혜성군(槥城郡)으로 개칭하였고, 당진현(唐津縣)·여읍현(餘邑縣)·신평현(新平縣)을 관할하였고 혜성군은 웅주(熊州: 公州)의 영현으로 개편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운주(運州: 洪州의 옛 지명)에 속하였다가 1106년(예종 1)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293년(충렬왕 19)에는 면주(沔州)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23)에 와서 면천군(沔川郡)으로 개칭되었다. 별호로 마산(馬山)·해종(海宗)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면천군은 당진군(唐津郡)으로 폐합되었다. 1917년 면천군의 일부였던 마암면이 면천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면천복씨는
1985년에는 총 1,689가구 7,002명,
2000년에는 총 2,287가구 7,47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