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개의 본관에 인구는 18,743명이 있습니다.(2000년 인구조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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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南宮)씨는 중국의 고대에서 비롯된다. 본래 황족(皇族)인 희(姬)씨 성이었는데 은(殷)나라에 이르러 남(南)쪽 궁(宮)에 살았다하여 남궁(南宮)으로 성(姓)을 정하였다고 한다.
남궁(南宮)씨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남궁괄(南宮适)로 추정된다. 남궁괄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네 친구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대장군으로 있을 때 폭군인 은(殷) 나라 주왕(紂王, BC1154~1111)에 의해서 투옥된 문왕(文王)을 기지를 발휘하여 구해내기도 하였다. 남궁괄은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한 공신으로 이상서(二尙書)에 오르고 한 지방을 식읍으로 받아 다스리게 되었으며 그 곳의 지명을 그의 성(姓)을 따라 남궁현(縣)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의 조카사위가 된 남궁괄(南宮括)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