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노시헌(盧始憲)시조 노시헌(盧時憲)은 광주노씨의 1세조 노서(盧恕)의 후손으로 노시헌(盧時憲)이 조선 태종 때 해주(海州)로 이주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광산 노씨에서 분관하고 노시헌을 1세조로 하여 해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인물
노시헌(盧時憲)의 7세손 노용수(盧龍壽)가 통정 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후손 노열지(盧悅之)는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예조 정랑(禮曹正郞) 노광협(盧光協)은 좌랑(佐郞) 노수(盧修),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노계종(盧繼宗), 부사(府使) 노성지(盧性之)등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덕룡(盧德龍, 1844生) : 문과(文科) 고종7년(1870) 식년시 병과노진태(盧鎭泰, 1799生) : 문과(文科) 헌종3년(1837) 식년시 병과노상의(盧尙義, 1782生) : 문과(文科) 순조14년(1814) 식년시 병과노진혁(盧鎭奕, 1839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식년시 병과노진형(盧鎭衡, 1808生) : 문과(文科) 헌종3년(1837) 식년시 병과노광협(盧光協, 1654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식년시 병과노단(盧○, 1745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식년시 병과노휘(盧○, 1768生) : 문과(文科) 정조19년(1795) 식년시 병과노등(盧橙, 1746生) : 문과(文科) 정조7년(1783) 식년시 병과노덕순(盧德純, 1839生) : 문과(文科) 고종6년(1869) 별시 병과 등 모두 2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7명, 생원진사시 4명, 의과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노씨는
1985년에는 총 795가구 3,359명,
2000년에는 총 633가구 1,94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