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돈(金墩)시조 김돈(金墩)은 김알지의 후손인 김재영의 후손이라고 한다. 김재영이 신라 진평왕 때 백제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안성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성으로 하였다. 이것이 신하에게 군(君)을 봉하는 법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의 기록은 없으며 고려 고종 때 김돈을 1세조상으로 하고 있다. 김돈은 안성현에서 출생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예부시랑, 한림학사, 상서 좌복야를 역임하였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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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애순(金愛順, 1582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택(金澤, 1592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언(金彦, 1588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명달(金鳴達, 1633生) : 무과(武科) 현종3년(1662) 증광시 을과김일춘(金一春, 1596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바위(金岩回,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기충(金起忠, 1593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김이복(金履福, 176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22년(1798) 식년시 이등김용기(金用基, 178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9년(1819) 식년시 삼등김윤영(金胤永, 1825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7명, 생원진사시 3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1世
순(淳) | 22世 상(相) | 23世 형(炯) | 24世 기(基) | 25世 선(善) |
26世 영(永) | 27世 근(根) | 28世 병(炳) | 29世 재(在) | 30世 종(鍾) |
31世 윤(潤) | 32世 동(東) | 33世 희(熙) | 34世 교(敎) | 35世 석(錫) |
36世 태(泰) | 37世 식(植) | 38世 연(然) | 39世 규(奎) | 40世 전(銓)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세손은 21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안성안성(安城)은 경기도 남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옛 안성군·죽산도호부·양성현이 통합된 지역이다. 고구려 때에는 내혜홀(奈兮忽)로 불렸으며, 초기에는 백제, 후에는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백성군(白城郡)으로 개칭하였고, 사산현(蛇山縣)·적성현(赤城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성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천안에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1년(명종 2)에 감무를 두었으며, 1361년(공민왕 10)에 이 지역 사람들이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하를 막은 공으로 이듬해에 수주의 일부지역을 편입시켜 안성군으로 승격되었다. 1399년(정종 1)에 관할 양량부곡(陽良部曲)이 양지현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 13)에 안성은 충청도로부터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안성군, 1896년에 경기도 안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양성군과 죽산군이 폐지되어 안성에 병합되어 안성군이 되었다. 1937년에는 안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에 용인군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되었고, 1992년에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안성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성김씨는
1985년에는 총 1,158가구 3,763명,
2000년에는 총 790가구 2,51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