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득배(金得培)시조 김득배(金得培)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의 11세손이며 판전의(判典醫) 김록(金祿)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상산김씨 족보에는 문충공파조(文忠公派祖)로 되어 있다.
그는 문과에 급제, 예문검열(藝文檢閱) 전객부령(典客副令)을 거쳐 우부대언(右副代言) 추밀원직학사(樞密院直學士) 서북면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 수충보절정원공신(輸忠保節定遠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지냈는데, 공민왕 10년 20만의 홍건적이 개경(開京)까지 침략해 왔을 때 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적과 싸워 개경을 되찾고 난을 평정한 사실이 문헌에 전한다.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후손들이 상산김씨에서 분적한 뒤 본관을 서산으로하여 이어온 듯하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봉남(金奉男,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김득석(金得錫, 1630生) : 무과(武科) 현종7년(1666) 별시 병과* 모두 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서산(瑞山)은 충청남도 서산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기곡군(基谷郡)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757년(경덕왕 16)에는 부성군(富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육현(地育縣: 서산시 지곡면 일대)과 소태현(蘇泰縣: 泰安)을 관할하였다. 1144년(고려 인종 22)에는 현으로 개편되었다가, 1284년(충렬왕 10)에 이 고을 사람인 정인경이 공을 세워 서주군(西州郡)으로 승격하였다. 1308년(충선왕 1)에는 서주목(西州牧)으로 승격하였다가, 1310년에 서령부(瑞寧府)가 되었다가 후에 서주(瑞州)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서산군(瑞山郡)으로 개칭되었고 1695(숙종 21)~1713년, 1733(영조 9)~42년, 1776(정조 즉위)~83년에는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서산군, 1896년에 충청남도 서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태안(泰安)·해미(海美)를 서산에 통합하였고, 군 내 동일면·동이면·군내면이 태안면으로 개편되었다. 1917년에는 서령면이 서산면으로 개칭되었고 1942년 서산읍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에 서산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태안군이 복원되어 분리되었다. 1995년에는 서산군이 서산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서산김씨는
1985년에는 총 462가구 1,970명,
2000년에는 총 2,560가구 8,08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 고려시대에 대학사(大學士)를 지낸 김영중(金永中)을 시조로 삼는 문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