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훤(李훤)시조 이훤은 고려 공민왕 때 춘방시학사(春坊侍學士)를 지내다가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고 조선이 개국되자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지낸 사위 박원(朴洹)과 함께 초산으로 낙향하여 스스가 산림처사라 칭하며 시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이훤을 시조로 하고 초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인물
이영춘(李榮春)이 임진왜란 때 수문장(守門將)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고, 이덕귀(李德龜)는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편 호장(戶長) 이신귀(李神龜)의 아들 이희담(李熙聃)은 학문이 뛰어나 문하에서 많은 후학을 길렀으며, 아들 이국렬(李國烈)과 함께 <호남영방(湖南營房)>의 선생으로 추대되어, 학덕과 인품으로 빈민구휼에 앞장섰던 이기영(李基瑛)과 더불어 초산 이씨를 더욱 빛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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