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황응성(黃應星)시조 황응성(黃應星)은 황주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 집안으로 부사를 역임했으나 선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후손들이 황주에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황주로 하였다.
인물
황윤후(黃胤後)가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전적·낭관·현감을 거쳐 부윤에 이르렀으며, 황인기(黃仁紀)가 형조정랑, 상의원 첨정 등을 역임하고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라 직장을 역임한 황득승(黃得承), 황순운(黃順運)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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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황윤후(黃胤後, 1587生) : 문과(文科) 인조3년(1625) 별시 병과황응성(黃應聖, 1556生) : 문과(文科) 선조18년(1585) 식년시 병과황민후(黃敏厚, 1691生) : 문과(文科) 영조4년(1728) 별시 병과황진(黃瑨, 1733生) : 문과(文科) 정조14년(1790) 증광시 병과황입(黃岦, 1850生) : 문과(文科) 고종23년(1886) 함경도도과 병과황하수(黃河水, 1552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을과황철(黃, 1769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3년(1813) 증광시 일등 장원급제황대영(黃大永, 1870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증광시 삼등황진(黃○, 1733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8년(1762) 식년시 삼등황명래(黃命來, 176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6년(1792) 식년시 이등 등 모두 2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2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14世
만(晩) | 15世 유(有) | 16世 승(承) | 17世 동(東) | 18世 환(煥) |
19世 중(中) | 20世 태(兌) | 21世 춘(春) | 22世 조(朝) | 23世 원(源)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5세손은 14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황주황주(黃州)는 황해도 중앙 북단에 위치하는 황주군 일대의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동홀(冬忽) 또는 동어홀(冬於忽)이라 불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취성군(取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전 태봉 무렵에 황주(黃州)로 바꾸었고 983년(성종 2) 황주목이 되었고, 993년(성종 12)에는 절도사(節度使)를 두었으며 천덕군(天德郡)이라 부르며 관내도(關內道) 관할로 두었다. 1012년(현종 3) 안무사(安撫使)를 두었다가 다시 목으로 개편하여 서해도(西海道)에 예속하였고 1217년(고종 4)에 지고령군(知固寧郡)으로 강등되었다. 1269년(원종 10) 원(元)나라의 동녕부(東寧府)에 속하였고, 1290년(충렬왕 6) 서북면으로 관을 옮겼으며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황주목(黃州牧)으로 환원되면서 서해도에 이관되었다. 조선 세조 때에 진(鎭)을 두어 2도호부, 6군, 5현 등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양부 황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황해도 황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7년 황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황주황씨는
1985년에는 총 502가구 2,291명,
2000년에는 총 260가구 86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