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필씨(大興弼氏)
유래
  • 시조 : 필몽량(弼夢良)
  • 시조 필몽량(弼夢良)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그의 후손 필성뢰(弼聖賚)는 조선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사성을 지냈는데 대대로 함흥에서 산것으로 되어 있다.
  • 인물
    시조 필몽량의 후손 필두만(弼斗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부사(府事)의 증손(曾孫) 필성뢰(弼聖賚)는 1798년(정조 22)에 문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한편 필성뢰는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에도 올라 있는데, 대대로 함흥(咸興)에 살았다고 적혀 있다.
    주요 인물
    ※ 해당 인물을 클릭하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 필성뢰(弼聖賚, 1752生) : 문과(文科) 정조22년(1798) 식년시 을과
  • 필성뢰(弼聖賚, 1752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6년(1792) 식년시 삼등
  • * 모두 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
  • 대흥(大興)은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지명으로 백제시대에는 임존성(任存城) 혹은 금주(今州)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임성군(任城郡)으로 개칭하여 웅주(熊州: 公州)의 관할로 있었고, 청무현(靑武縣: 靑陽)과 고산현(孤山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대흥군으로 바꾸고, 1018년(현종 9)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대흥현이 되었고, 1682년(숙종 7) 대흥군으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대흥군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 대흥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예산군, 덕산군과 함께 예산군으로 통합되면서 대흥군은 폐지되었다. 1934년 대흥면(大興面)으로 유지하다가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대흥필씨는
    1985년에는 총 39가구 181명,
    2000년에는 총 52가구 1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