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전방숙(全邦淑)시조 전방숙(全邦淑, 시호는 문정)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으로 전공렬(全公烈)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 한림학사,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하고, 용성(현재의 용궁)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용궁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 묘소는 강원도 평창군 동도산에 있다.
인물
고려시대에 태사(太師)를 지낸 전정민(全正敏)을 비롯하여, 전법총랑을 지낸 전충경(全忠敬), 조선시대에는 세종 14년에 문과 급제하고 군수(郡守)를 지낸 전중권(全仲權), 현감을 지낸 전순조(全順祖) 등 많은 관 직자를 배출하였다. 정언(正言)을 지낸 전영귀(全永貴), 인의(引儀)를 지낸 전몽정(全 夢井),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전찬(全纘) 등이 발전을 이룩하였다.
전원발(全元發)은 고려 말엽 원나라에 가서 문과에 장원하고 병부상서, 집현전 태학사에 오른후 귀국하여 조선 태조 때 축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는 당시에 글씨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으며 용궁의 소천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그리고 전명삼(全命三)은 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민심을 샀고, 전삼달(全三達)은 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나라에 공을 많이 세웠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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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광제(全光濟, 1697生) : 문과(文科) 영조19년(1743) 정시 병과전영령(全永齡, 1697生) : 문과(文科) 세조8년(1462) 식년시 정과전중권(全仲權, 1697生) : 문과(文科) 세종14년(1432) 식년시 동진사전홍교(全洪敎, 1835生) : 문과(文科) 고종7년(1870) 식년시 병과전근사(全近思, 1675生) : 문과(文科) 숙종41년(1715) 식년시 갑과전형(全瀅, 1565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증광시 병과전명삼(全命三, 1663生) : 문과(文科) 숙종17년(1691) 증광시 병과전이성(全以性, 1578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병과전후창(全後昌, 1630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전대남(全大男, 1609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등 모두 2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8명, 생원진사시 7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4世
환(煥) | 25世 재(載) | 26世 호(鎬) | 27世 홍(洪) | 28世 식(植)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세손은 24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용궁(龍宮)은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에 속한 지명으로 신라시대에 축산현(竺山縣)·원산현(園山縣)이라 하였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용주(龍州)로 승격되었다가, 목종 때 군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용궁으로 고쳐서 상주(尙州)에 편입하였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용궁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용궁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폐지되어 신하면(申下面)은 의성군(義城郡)에, 나머지는 용궁면 등으로 분할되어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용궁전씨는
1985년에는 총 5,567가구 22,375명,
2000년에는 총 8,693가구 27,70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