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전공식(全公植)시조 전공식(全公植)은 도시조 전섭의 27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안염사(按廉使)로 있으면서 몽고군이 침입하자 공을 세워 계림(현 경주)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해서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인물
2세손인 전민(全敏)은 고려시대에 중랑장을 지냈고, 그의 아들인 전인적(全仁迪)은 산원랑(散員郞), 전석(全碩)은 전객령(典客令)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전세(全世)는 공조전서(工部典書), 전인우(全仁祐)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냈고, 전수준(全秀俊)은 판관(判官), 전수만(全壽萬)은 군수를 지냈으며 전흡(全洽)은 검교의 관직을 지냈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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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흡(全洽, 1610生) : 문과(文科) 인조24년(1646) 식년시 병과전극성(全克成, 1607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전흥부(全興復, 160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전인남(全仁男, 1624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을과전영(全瑛, 1564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전응길(全應吉,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전택령(全宅齡, 1698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3년(1747) 식년시 삼등*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1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전씨는
1985년에는 총 3,296가구 14,884명,
2000년에는 총 1,892가구 6,00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