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장유(張裕)시조 장유는 장정필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문하시중으로 공을세워 예산군에 봉해졌다가 진천군으로 다시 봉해졌다. 그후 벼슬을 그만두고 진천에 낙향하여 살았기 때문에 본관을 진천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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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언침(張彦○, 1549生) : 문과(文科) 선조21년(1588) 식년시 을과장언오(張彦悟, 1544生)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식년시 병과장세필(張世弼, 1544生)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병과장의국(張義國, 1544生) : 문과(文科) 선조19년(1586) 중시 병과장의국(張義國, 1537生) : 문과(文科) 명종19년(1564) 식년시 병과장언오(張彦悟, 1544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년(1570) 식년시 삼등장경국(張敬國, 1519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장충국(張忠國, 153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0년(1555) 식년시 삼등장의국(張義國, 153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삼등장창국(張昌國, 1565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8년(1605) 증광시 삼등*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명, 생원진사시 5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30世
석(錫) | 31世 영(永) | 32世 근(根) | 33世 병(炳) | 34世 기(基) |
35世 우(愚) | 36世 집(執) 명(命) | 37世 녕(寧) | 38世 성(成) | 39世 희(熙) |
40世 강(康) | 41世 재(宰) | 42世 정(廷) 규(揆) | 43世 학(學) | 44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1세손은 30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진천(鎭川)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북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 금물노군(今物奴郡) 또는 수지군(首知郡)·신지군(新知郡) 등으로 불렸다가 5세기 후반 신라의 북진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어 484년(소지왕 6) 만노군(萬弩郡)이 설치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 흑양군(黑壤郡)으로 개칭하였고, 도서현(都西縣)과 음성현(陰城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와서 강주(降州)로 불렸다가 진주(鎭州)로 개칭하였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청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259년(고종 46)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 분리하여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269년(원종 10)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진천으로 강등되어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진천현으로 되어 현감(縣監)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진천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북도 진천군이 되었다. 1973년에 진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천장씨는
1985년에는 총 228가구 986명,
2000년에는 총 365가구 1,21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