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장씨(晋州張氏)
유래
  • 시조 : 장방언
  • 시조 장방언은 인진부사를 지냈으며, 후손으로는 1717년(조선 숙종 43년) 장희운의 아들 장두주가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판교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장호상의 아들 장영석이 1893년(조선 고종 3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 장두주(張斗周, 1683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병과
  • 장영석(張永錫, 1874生) : 문과(文科) 고종30년(1893) 별시 병과
  • 장붕(張鵬, 1580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 장득룡(張得龍, 1584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 장진봉(張秦封, 1637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
  • 장움남(張○男, 1593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 장희익(張希益, 1610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 장건(張健, 1581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
  • 장건두(張建斗, 1713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0년(1754) 증광시 삼등
  • 장우한(張遇漢, 1615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3년(1662) 증광시 삼등
  •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 진주(晉州)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장씨는
    1985년에는 총 424가구 2,069명,
    2000년에는 총 421가구 1,37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