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궁흠(弓欽)시조 궁흠(弓欽)은 중국 태원(太原) 사람으로서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箕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산에 살아왔다고 한다. 그후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토산에서 살아온 궁계신(弓繼信)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토산으로 하였다.
인물
궁제(弓濟) : 고려 숙종 때 우문감(右門監)
궁원일(弓元日) : 조선 고종 때 관찰사(觀察使)
궁달초(弓達楚), 궁억로(弓億魯), 궁현섭(弓顯燮) : 독립운동가.
궁인성(弓寅聖) : 독립운동가. 호 만취(晩翠). 평안북도 순천군 출신.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3·1운동 후에는 독립단 평남 지단장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1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세거지
평남 순천군 일원
평남 개천군 일원.
항렬자
17世
재(在) 배(培)
| 18世 호(鎬) 일(鎰)
| 19世 연(淵) 형(瀅)
| 20世 식(植) 모(模)
| 21世 희(熙) 하(夏)
|
22世 환(桓) 균(均)
| 23世 현(鉉) 진(鎭)
| 24世 철(澈) 수(洙)
| 25世 진(進) 달(達)
| 26世 규(奎) 두(斗)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8세손은 17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토산군토산(兎山)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과 신계군(新係郡)에 걸쳐 있었던 옛 지명이다. 백제와 고구려에 속해있던 때는 오사함달현(烏斯含達縣) 또는 월성현(月城縣)으로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경덕왕이 토산(兎山)으로 고쳤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장단현(長湍縣)에 속하였다가, 1062년(문종 16) 개성(開城)의 직할이 되고, 예종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縣監)을 두어 황해도에 이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토산군(兎山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일부는 신계군(新溪郡)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금천군(金川郡)에 편입되었다. 1952년에 금천군의 일부 지역을 독립시켜 토산군을 신설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토산궁씨는
1985년에는 총 127가구 480명,
2000년에는 총 183가구 55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