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윤절생(尹切生)시조 윤절생(尹切生)은 고려시대에 호장을 지냈다. 그의 4세손 윤승관이 정당문학을 지내고 고울(영천)백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하였다.
영천윤씨의 인물로는 태종 때 군수 윤순(淳), 성종 때의 이조참의 윤긍(兢), 선조 때 중추부참지사 윤빙(聘) 등이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윤천각(尹天覺, 1710生) : 문과(文科) 영조14년(1738) 식년시 병과윤효각(尹效覺, 1782生) : 문과(文科) 순조16년(1816) 식년시 병과윤연(尹淵, 1531生) : 문과(文科) 명종13년(1558) 식년시 병과윤세신(尹世臣, 153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삼등윤사종(尹嗣宗, 153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윤취선(尹就善, 1562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1년(1588) 식년시 삼등윤진(尹璡, 1562生) : 의과(醫科) 중종26년(1531) 식년시윤제신(尹悌信, 1562生) : 의과(醫科) 인조13년(1635) 증광시*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생원진사시 3명, 의과 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8世
두(斗) | 29世 택(澤) | 30世 수(樹) | 31世 환(煥) | 32世 재(在) |
33世 현(鉉) | 34世 영(永) | 35世 식(植) | 36世 - | 37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9세손은 28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영천(永川)은 경상북도 영천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대 골벌국(骨伐國)이었던 것을 초기 신라 때에는 절야화군(切也火郡)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임고군(臨皐郡)으로 개칭하였다. 925년(경애왕 2)에 고울부(高鬱府)로 고쳐 불렀고, 도동현(道同縣)·임천현(臨川縣)·맹백현·이지현(梨旨縣) 등의 현들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도동·임천현을 합하여 영주군(永州郡)이라고 불렀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파견하였다. 1018년(현종 9)에 경주(慶州)에 편입되었다가, 1172(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후에 주(州)로 승격되었다. 1414년(태종 14) 영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영천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신녕군(新寧郡)이 영천군으로 폐합되어 영천면을 신설하였다. 1937년 영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1년에는 영천읍이 시로 분리 승격했고, 1995년 영천군을 영천시에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천윤씨는
1985년에는 총 355가구 1,745명,
2000년에는 총 275가구 84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