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당악양씨(唐岳楊氏)의 유래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양재창(楊再昌, 1622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1년(1660) 식년시 삼등양점형(楊漸亨, 159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년(1624) 증광시 삼등양점형(楊漸亨, 159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년(1624) 증광시 삼등양덕록(楊德祿, 1553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2년(1610) 식년시 일등양의직(楊懿直, 1556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삼등양의시(楊懿時, 158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삼등양덕유(楊德裕, 1530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5년(1582) 식년시 삼등양의원(楊懿元, 1590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3년(1652) 증광시 삼등양현망(楊顯望, 1590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4년(1663) 식년시 삼등*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9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중화당악(唐岳)은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과 강남군(江南郡) 일대의 옛 행정구역 이름이다. 고구려 때에는 가화압(加火押)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당악현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에는 서경에 딸린 지역으로 당악촌이라 불리우다가 1136년(인종 14) 중화현으로 고치고, 1322년(충숙왕 9) 중화군으로 승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는 도호부로 승격하였고, 1896년(고종 33) 평안남도 중화군과 상원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상원군이 중화군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악양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1가구 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