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박언화(朴彦華)시조 박언화(朴彦華, 완산대군)는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여섯째 아들로 완산대군(完山大君)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주요 인물
※ 해당 인물을 클릭하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박숙지(朴叔只, 1598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박치흥(朴致興, 1641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을과박사영(朴士榮, 1597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박계흥(朴繼興, 1649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박교원(朴嶠遠, 1826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3년(1852) 식년시 삼등박세관(朴世寬, 1826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삼등박칭(朴稱, 1591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삼등박문호(朴文昊, 179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6년(1840) 식년시 삼등박희(朴憘, 1567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6년(1603) 식년시 삼등박예운(朴禮雲, 1597生) : 역과(譯科) 인조11년(1633) 증광시 등 모두 1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생원진사시 5명, 역과 2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20世
상(相) | 21世 규(奎) | 22世 대(大) | 23世 선(鮮) | 24世 기(基) |
25世 현(鉉) | 26世 - | 27世 - | 28世 - | 29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1세손은 20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박씨는
1985년에는 총 598가구 3,080명,
2000년에는 총 765가구 2,44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