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박항(朴恒)시조 박항(朴恒)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10세손으로 고려 인종 때 좌정승을 지냈고 정사훈으로 영암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영암으로 하였다.
- 묘소는 함경남도 문천에 있다.
인물
박항은 평장사 박언인(彦仁)의 손자이고, 시중을 지낸 박찬행(讚行)의 증손이며, 그의 아들 박통(通)은 영암군이고, 손자 박광(光)은 문하시중, 증손 박성제(成濟)는 장군, 7대손 박성찬(成贊)은 좌찬성, 9대손 박징(澄)은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박필진(朴必珍, 1716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별시2 을과박경원(朴慶元, 1575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식년시 갑과박호문(朴好文, 1650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박성지(朴成智, 1559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박찬영(朴贊英, 1646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박성길(朴成吉, 1646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박준서(朴俊瑞, 1650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박승주(朴承胄, 1650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정시 병과박정길(朴廷吉, 1642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박지행(朴志行, 1648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 등 모두 2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13명, 생원진사시 14명)※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항렬자
31世
영(榮) | 32世 시(時) | 33世 진(鎭) | 34世 제(濟) | 35世 권(權) |
36世 찬(燦) | 37世 기(基) | 38世 종(鍾) | 39世 한(漢) | 40世 병(柄) |
41世 형(炯) | 42世 재(在) | 43世 석(錫) | 44世 - | 45世 - |
※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2세손은 31대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영암(靈巖)은 전라남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마한의 영토였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으로 월내군(月奈郡)으로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영암군(靈巖郡)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낭주(郎州)로 개칭하고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낭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감으로 영암군으로 환원되었다. 낭산(朗山)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영암군이 되었고, 1896년에 전라남도 영암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암면과 시종면 등 11개 면으로 분면되었고, 1979년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암박씨는
1985년에는 총 1,380가구 5,670명,
2000년에는 총 1,954가구 6,12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