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여헌(汝獻). 호는 나학자(懶學者).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박유림(朴有林)이고,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박기종(朴起宗)이며,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이다. 향시(鄕試)에 여러번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 수차례 낙방하자 그 후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숙부 읍청당(○淸堂) 박사종(朴嗣宗)과 중봉(重峰) 조헌(趙憲)에게 수학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해박한 전거로 예(禮)를 묻자 정구가 감탄하였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을 찾아가 도학(道學)을 배웠다. 수직(壽職)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 행부호군(行副護軍)에 제수되었고, 1631년(인조 6)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고창오씨(高敞吳氏)는 고려 시대 학사(學士) 오학린(吳學麟)의 후손이자, 증참의(贈參議) 오항(吳沆)의 딸로 1녀를 두었다. 딸은 한산이씨(韓山李氏) 증참판(贈參判) 이덕사(李德泗)에게 시집가서 1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 이태연(李泰淵)은 1642년(인조 20) 임오정시문과(壬午庭試文科)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여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큰딸은 송시열(宋詩烈) 에게, 둘째 딸은 정용(鄭墉) 에게, 셋째 딸은 이천배(李天培)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