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여임(汝任). 호는 금시당(今是堂). 행(行)의 후예로, 진사 원(遠)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49년 봉교를 거쳐 전적이 되어 '중종실록',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병조의 좌랑, 정랑을 지냈다. 이어 헌납, 장령, 사간을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고, 그뒤 고향에 돌아가 산수를 즐기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셔 효자로 알려졌고, 김극일(金克一), 이정(李楨), 노정(盧楨)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유학자로 널리 알려져 1564년 사유(師儒)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