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여욱(汝頊). 고려충신 몽주(夢周)의 후손으로, 사직서참봉 구응(龜應)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1594년(선조 2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박사에 기용되었다. 1598년 선공감역을 지내고 1604년 군기시첨정으로 옮겼다가 곧 이어 삭녕군수로 나갔다. 1608년 천안군수로 재직시에 산릉(山陵) 외재궁(外梓宮)의 건축을 맡아 감독하였는데 준공시일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추계(推啓)를 당한 일도 있다. 1613년(광해군 5) 양근군수가 되었으나 국사의 어지러움을 목격하고 사임한 뒤 향리로 돌아왔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직무를 수행하였고, 외직에 나가서는 자기 일보다 주민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처리하였으므로 주민들은 명관으로 숭앙하였으며, 선배들은 청렴하다고 칭찬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노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