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채이항(蔡以恒)
  • 인천채씨(仁川蔡氏),  출생~사망 : 1596 ~ 1666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여구(汝久). 호는 오봉(五峰). 함창 출신. 아버지는 증참의 천서(天瑞)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국신(國臣)의 딸이다.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 행재소(行在所)로 인조를 찾아가 배알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의병을 모아 경상우병사 민영(閔泳)과 감사 심연(沈演) 등을 도왔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향리로 돌아가 대청(對淸)복수책을 상소하였다. 그뒤 척화신으로 청나라의 미움을 사 1640년 김상헌(金尙憲), 조한영(曺漢英)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3년에 돌아왔다. 1648년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 목천현감,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소촌찰방(召村察訪), 군자감주부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어 치적과 진휼(賑恤)에 힘쓴 공으로 포상되었다. 그뒤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평시서영(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