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 아버지는 간성군수 공작(公綽)이며, 어머니는 증이조참의 이형례(李亨禮)의 딸이다. 선조 때의 영의정 성룡(成龍)의 아버지이다.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성균교수(知成均敎授)가 되었다. 이어 황주, 상주, 양주, 안동의 훈도(訓導)를 역임하면서 지방교육에 큰 힘을 기울였다. 1546년(명종 1) 양현고직장(養賢庫直長)을 겸하였으며, 이듬해 박사가 되었으나 파직되었다. 1549년에 전적, 감찰, 공조좌랑을 거쳐, 1553년에는 장령, 사복시정, 사간, 장악원정이 되었다. 이듬해 의주목사로 나가 국경지방의 밀수행위를 조절하고 생산을 권장하여 크게 치적이 있었다. 1564년에 황해도관찰사로 나아가 민폐를 제거하고 교육을 진흥하는 등 선정으로 알려졌다. 1560년에 정주목사로 부임해서도 교육의 진흥과 민생의 안정에 힘썼다. 1572년(선조 5)에 승지를 거쳐 예조참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다. 천성이 충신(忠信)스러우며 모든 일에 성의를 다하고 대소공사에는 힘을 다하며 명예와 지위에 뜻을 두지 않았다. 저서로는 '입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