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양원(養源). 호는 만사(○沙). 참찬 증(增)의 아들이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93년 정언, 지평, 세자시강원필선을 역임하고, 이듬해 장령이 되었다. 이때 정철(鄭澈)에 대한 삭직논의가 일어나자 모두 두려워하여 말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부당성을 과감하게 상소하였다. 1603년 성주목사를 비롯하여 광주목사(光州牧使), 호조참판, 경상도관찰사, 병조참판에 이르렀으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한성부우윤으로 총관(摠管)을 겸하다가 나이가 많아 사직하였다. 대단한 호주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