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완(鄭浣)
  • 연일정씨(延日鄭氏),  출생~사망 : 1473 ~ 1521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신지(新之). 호는 겸재(謙齋). 병조판서 연(淵)의 증손으로, 남부참봉(南部參奉) 진(秦)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배천군수 윤우(尹遇)의 딸이다. 남효온(南孝溫)과 함께 산사에서 학문을 닦다가 1504년(연산군 10) 참봉으로 갑자사화를 입어 영천으로 유배되고, 1506년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었다. 1507년(중종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고, 1514년 선릉참봉(宣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18년 학행으로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에 등용되고, 이어서 공조, 호조의 정랑을 지냈다.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병과로 급제, 예조, 이조의 정랑을 지내다가 이해 기묘사화로 현풍에 부처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신의가 높고 언론이 정대하였으며, 마음과 처사가 탄이(坦易), 관유(寬裕)하고, 이해와 시비를 가리는 데 촛불처럼 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시귀(蓍龜)로 일컬었다.